나는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미국 실리콘 벨리에 오게 되었고,
그때 이후로 어쩌다 40 넘어서까지 미국에 눌러앉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 정착하게 된 계기와 과정 또한
언젠가는 글로 풀어보면 재밌을 것 같지만
지금은 그 얘기보다 영어 얘기를 하고자 한다.
나처럼 한국에서 태어나고 대학까지 나온,
말 그대로 "영어 국내파"는 요즘같이 어릴 때부터 부모님 따라 외국에서 살게 되어
쉽게 영어를 제2외국어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22살에 미국으로 인턴십으로 왔던 나는,
반도체 기술을 가진 조그만 한국회사에서 일했는데
5-6명이 전부인 회사에 모두 한국사람들이었지만
영어로 전화받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나름 100명이 넘게 지원하여 1명 뽑는 인턴십 자리에 뽑혀온 인재라고는 했지만
미국 생활영어를 맞닥트리니 속절없이 무너지는 내 영어가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했던 영어공부보다 더 열심히 책도 읽고 신문도 사고 보고 했지만
생각만큼 늘지가 않아서 그 또한 며칠 하다 중단하기를 반복하는 등,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실력은 잘 늘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과 미국에서 내가 영어에 들인 돈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나다.
나는 매주 1회 따로 원어민 선생님과 1:1로 만나서 영어회화 과외를 받았었고
일주일에 5일은 새벽 회화반 수업을 듣고 대학 수업을 시작하였다.
토익은 당연히 별도 주말반으로 들었고
토익 준비를 위해 산 자료와 책 학습 도구등은 셀 수도 없다.
대학 전에 나의 부모님이 내게 쏟은 영어 과외비 또 어떠하고.
수많은 대한민국 국내파 일반인들이 그러하듯
왜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의미 없이 쓰고 나서도
미국에 나의 현지 영어는 피자가게에 전화 주문하나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좌절하다 다시 영어책보다를 반복한 후,
나는 결혼과 육아로 내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잠시 미뤄두고 있었다.
아이가 3살 될 무렵, 이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인터뷰 준비를 할 때 영어는 또 나를 붙잡았다.
20개의 예상질문과 대답을 미친 듯이 준비하고
첫 인터뷰를 어떻게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일하게 된 첫 직장은 한국 대기업 해외법인의 회계직으로
인보이스와 회계장부 관리, 거래처에 전화하는 업무 등이었다.

본격적인 업무영어에 100% 노출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영어와 씨름하다 좌절하기를 반복하며
이제는 미국직장 생활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있다.
그동안 나는 총 4번의 이직을 했다.
1:1 인터뷰, 그룹 인터뷰, 예상 질문, 일상대화, 질문 리스트 등
이직할 때마다 나의 인터뷰 준비 노트 양은 늘고
내용은 다져지는 것이 확연히 눈으로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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