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본질 - 특별한 이야기

부모와 자식이란 - 보이지 않는 폭력

Baileya 2023. 7. 10. 09:43

나의 부모님은 첫째인 나를 끔찍이도 여기셨다.

 

시키지 않아도 공부에 애착을 보였고

스스로 학급 반장이 되어왔고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알아서 잘했다.

 

부모님이 학교에 방문하실 때면 나 때문에 항상 어깨가 으쓱했다. 

 

그런 내가 사춘기가 되면서 공부도 예전만 못하고

친구를 더 좋아하고 방에서 안 나오니 그렇게나 섭섭해하셨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대구에서도 전통 8 학군에 있었고

다들 공부라면 날고뛰는 학생들이 많았다.

 

똑똑하다고 하는 나도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나는 친구랑 얘기하고 비밀을 나누는 것이 더 좋았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섭섭해했다.

 

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일까,

왜 친구를 더 좋아하면 안 되는 것일까,

왜 꼭 가족과 저녁 먹는 자리에 앉아 있어라 하는 걸까 나는 배도 안고픈데. 등등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소위 사춘기 자식과 부모의 전형적인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대학 들어가고 졸업할 때까지 그 관계는 이어졌다.

 

지금 나는 18살 아들이 있다.

이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위 미국 놈이다.

 

내가 자란 1980년대와 비교할 것이 아니지만

미국도 자식 교육에 헌신적인 부모라면 얼마든지 많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고, 인종, 국적 가릴 것 없이

사춘기 아이와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힘든 것이다. 

 

어쨌거나 아이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립대에 입학 예정이다.

요즘 18살이면 사춘기를 조금 넘긴 나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가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심지어 고2 때 나의 이직으로 주를 바꿔서 이사해야 했던 때도

아이는 여전히 본인의 감정을 솔직히 얘기하고 표현하는 것에 명확했다.

 

아직 나나 남편은 아이와 고성이 오가며 다퉈본 적이 없고

일주일에 한두 번 자기 전 우리 방에 들려

이것저것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가는 아직은 소위 스위트하다.

 

고작 아이 하나 키워본 부모라 자녀 양육에 대해서 뭐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다만 아이를 키워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일각에서 말하는 부분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의견이 좀 다르다.

 

맞다, 아이를 키워보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만큼 또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내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부분도 크더라.

 

우선, 아이를 잘되게 한다는 이유로, 더 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이유로

부모의 욕심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이입하게 된다.

 

사춘기 때 부모와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성적과 진로다.

 

어렸을 때는 곧 잘하던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성적이 떨어지는데

속이 타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이점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의 경우 맞벌이 부부라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었는데

1년에 3만 불 (4천만 원) 되는 학비가 들었다.

 

아이는 사립학교에서 시키는 선행학습에 잘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 붙잡고 숙제시키느라 소리 지르고 혼내고 나면 둘 다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그러한 시간이 몇 달이 지나고

급격하게 내게 말 거는 횟수가 줄어들고 멀리하는 아이의 행동을 느낄 수가 있다.

 

말투는 반항적이고 행동은 거칠어졌다.

 

 

 

나로서는 이때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아이가 힘들어함에도 어르고 달래고 혼내가며 성적을 유지시키기 위해 계속 끌고 갈 것인가,

아니면 성적은 둘째로 치고,

아이와의 관계 개선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하는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나도 부모가 처음이라 혼란스럽고 힘든 건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이렇게 억지로 계속 시키고 혼내다가는

성적도, 관계도 둘 다 놓치게 되는 것이 뻔히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성적을 내 순위에서 제쳐 두기로 결정했다.

 

숙제 좀 덜해가도,

선생님께 주의 노트를 받아도,

시험 점수가 덜 나와도,

선행 학습이 안되어도,

 

우선 아이 자체에 집중하기로 하고

더 이상 서로에게 상처 주는 가르침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모든 과외 수업과 학습을 다 중지하고

스스로 숙제를 하도록 했고,

모르는 것은 스스로 학교 선생님께 묻도록 하고

내가 직접 가르치고 고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변한 뒤, 당연히 학교 공부는 바닥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우리 부모님은 시험 성적이 안 나와도 혼내지 않는 부모님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큼 자신감 가득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낮은 시험 점수가 아이의 기분을 망치고 나와의 관계를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이때 한 결정이 내가 인생에서 잘한 몇 안 되는 결정이었다.

 

결국 각자 인생에서 남는 것은

아이의 성적이 아니라 서로를 지지하고 힘들 때 위로가 되는

부모 자식과의 단단한 관계가 아닐까?

 

그때 성적을 선택하여 아이의 시험 점수를 올리고 학원을 더 보냈다면

지금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일까?

 

아니다.

 

우리 아이도 나처럼 평범한 두뇌라,

시험 점수 더 올리고 학원 더 다녔다고 아이비 대학을 갈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 거다. 

 

성적이 전부고

인생의 절대 기준이라는 부모님의 주입식 교육을 되풀이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자식과 나를 별도의 독립체로 인정하고 나의 욕심을 이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 너를 위해 이런다는 사랑을 핑계로

내 욕심을 이루려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도대체 내 아이가 왜 나의 욕심을 채워 주어야 하는가?

 

부모가 처음인 우리는,

나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이 보이지 않는 폭력을

되풀이하고 대물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